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굴 제국 (문단 편집) == 상세 == [[마우리아 왕조]] 이래 인도에 존재했던 역대 왕조들 가운데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했던 대제국이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인도 아대륙 거의 대부분을 통치하며 국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티무르 제국]] 출신의 [[바부르]]가 건국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막강한 화기를 바탕으로 [[델리 술탄국]], [[아프가니스탄]], [[라지푸트|라지푸트 주]] 등을 꺾고 빠른 속도로 인도 북부의 패권국으로 떠올랐다. 이후 바부르의 손자인 [[악바르]] 대제의 재위기에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으며, [[샤 자한]] 황제의 재위기에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아우랑제브]] 황제 시기에 최대 판도를 이룩하면서 약 2,000여 년만에 인도 대륙 대부분을 통일한 제국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다만 이토록 강대했던 무굴 제국도 아우랑제브 황제 사후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반란들로 크게 약화되었다. 1700년대 초중반에 [[아프샤르 왕조]]의 [[나디르 샤]]에게 결정적인 치명타를 맞고 이후 남부의 [[마라타 동맹]]과 인근 국가들에게 보호국 신세로 전락하면서 대제국의 면모를 잃어버렸다.[* 참고로 마라타 동맹은 아우랑제브 황제의 광폭 정벌 활동으로 위협을 느낀 인도 남부의 마라타인들이 힌두 영웅 시바지 본슬레 밑에 모여 창설한 남인도의 국가연맹으로, 초기에는 무굴 군대에게 밀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굴 제국이 흔들리면서 인도 최강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무굴의 황제들은 심지어 반란군을 피해서 델리를 버리고 [[몽진|도망을 갈]] 정도로 처지가 비참해졌고, 인도의 황제라는 칭호는 간신히 유지했지만 황제의 격에 맞게 대우해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마라타 동맹이 약화된 후에는 1803년에 [[영국 동인도 회사]]에게 종속되어 식민지 신세가 되어버렸으며 수도인 [[델리]]와 그 주변 일대 만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수준으로 몰락하였다.[* 다만 영국은 무굴의 황제를 타 인도 토후들처럼 대하지는 않았고, 명목상으로는 '인도의 황제'로 대우해주었다.] 이후 약 50여 년간 사실상 영국의 괴뢰국으로 남았으며 1857년에 [[세포이 항쟁]]이 일어난 후에 공식적으로 멸망당했다.[* 당시 저항하는 인도인들은 무굴 황제를 중심으로 결집했고, 이에 무굴 제국의 상징성에 두려움을 느낀 영국 동인도회사는 아예 무굴 제국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다.] 무굴 제국 멸망 후의 인도에는 대신 [[인도 제국]]이 세워졌으며, [[영국 국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이 무굴의 황제를 대신하여 '인도의 황제' 칭호를 사용했다.[* [[빅토리아 여왕]]과 [[대영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서 황제를 칭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로마 제국]]과의 연관성이 없었다.(애당초 잉글랜드의 유래가 기존 로만 브리튼인을 몰아낸 게르만족인 앵글로색슨족과 중세 시기 들어온 바이킹 계통의 혼합인지라 로마와 연관이 있을수가 없다.) 이때문에 서양의 황제는 될 수 없었으니 대신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인도의 황제를 칭해 권위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이는 당시 서구 열강들이 유럽 바깥의 황제 칭호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했기에(관심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무굴 제국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팽창한 국가였으나 악바르 대제 시기에 제대로 된 제도들을 정비하고 공권력 확충에 힘썼으며 지방의 엘리트 기득권 계급들을 편입시키는 등 내정에 신경쓰면서 몇 백년 간 지속될 제국의 기틀을 닦았다. 무굴 제국은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였으며 전체 세입의 절반 이상을 농민들에게서 거두어 들였다. 인도는 17세기를 통틀어 무굴 제국의 통치 하에 상대적인 평화기를 맞았으며, 이덕분에 인도 전역에서 경제 활성화와 무역의 진흥이 일어날 수 있었다. 유럽의 상인들에게는 비단과 향신료, 사치품 등을 팔았으며 이를 통하여 막대한 수입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예술을 크게 후원했던 [[샤 자한]]의 재위기에는 직조업, 문학, 건축, 회화 등이 크게 발전했으며, 이 덕분에 [[타지마할]], [[붉은 요새]], [[아그라 요새]], 라호르 요새 등 인도 건축의 걸작들이 지어지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